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문단 편집) == 기타 == 애용하였던 저격총은 4배율 PE 스코프[* PU가 사용되기 전에 쓰인 4배율 조준경이다.]를 장착한 [[모신나강|모신나강 M1891/30]].[* 흔히들 [[SVT-40]]을 썼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모신나강을 썼다.[[http://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2/06/during-wwii-lyudmila-pavlichenko-sniped-a-confirmed-309-axis-soldiers-including-36-german-snipers/|#]] 이렇게 잘못 알려진 이유로는 그녀가 전선에서 물러나고 교관으로 활약할 때 SVT-40을 들고 찍은 사진이 널리 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SVT-40은 소련의 여성 저격수들 사이에서 노리쇠 후퇴를 할 필요 없이 바로 재조준을 할수 있다는 점 덕에 널리 쓰였다.] 그녀는 이 총과 함께 309명을 사살하여 영웅으로 거듭났다. 전체 남녀 통합 전체 저격수 전과로는 309명 사살로 23위에 랭크되어 있고 여성 중에서는 1위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첫 전과를 올린 것이 1941년 8월이고 부상으로 전선에서 빠져나온 날이 1942년 6월로 총 10개월 동안 달성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시모 해위해]]의 100일동안 542명을 사살한 기록 다음으로 많다. 그래서 만약 그녀가 부상을 입지 않고 종전까지 쭉 활동했다면 독일군 장성 여러 명 뒷목잡게 했을 거라는 말도 나온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https://goaravetisyan.ru/en/syn-lyudmily-pavlyuchenko-snaipera-rossiiskaya-tennisistka-anastasiya-pavlyuchenkova-biografiya-sportivna/|결혼을 3번 했다.]][[https://bookingsky.ru/en/lyudmila-pavlyuchenko-lichnaya-zhizn-muzh-deti-uvidev-na-spine/|#]][[https://www.archyde.com/stalins-deadliest-sniper-was-ukrainian-and-killed-300-nazis/|#]][[https://nypost.com/2018/05/12/soviet-girl-sniper-had-309-kills-and-a-best-friend-in-eleanor-roosevelt|#]][* 알려진 정보가 각각 달라서 무엇이 제일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첫번째 결혼은 그녀가 16세 때 알렉세이 파블리첸코(Alexey Pavlichenko, 1916?~1950?)[* 파블리첸코라는 성씨는 이 남자와 결혼한 이후에 바뀐 것. 아내와 반대로 정보가 알려진 것이 전혀 없어서 이 남자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는 알려지는 정보가 다르다. 류드밀라 또래의 남학생, 의대생, 의사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언제 태어났는지도 언제 죽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https://www.wikitree.com/wiki/Pavlichenko-2|여기]]에선 기록이 있었다고 하는데 류드밀라 또래의 1916년생이며 1950년 이전 전쟁 중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있다. 여하튼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16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내와 자기 자식까지 버리고 떠났다. 기억이 좋게 남지 않아서인지 류드밀라는 알렉세이와의 결혼생활에 관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또 무슨 감정이 남아있었는지 성씨는 이혼 후에도 그대로 유지했다. 이 스캔들 때문에 류드밀라의 가족은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로 이사를 가야 했다.]라는 남자와 하였고, 아들 1명[* 이름은 로스티슬라프 파블리첸코(Rostyslav Pavlichenko, 1932~2007). 류드밀라가 무려 '''16살에 낳은''' 아들이다(물론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것도 아직 발전 전이라 낙후됐던 소련의 사정을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류드밀라는 이후 대학까지 진학한 인텔리였다). 아버지는 첫 번째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세이와 류드밀라 양쪽 둘 다 어리고 철없던 나이에 연애를 하다가 2달 후 실수로 생긴 자식이었는데,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알렉세이는 그와 아내를 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로스티슬라프는 태어나서 아버지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류드밀라와 그의 부모님이 양육했다.]을 두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녀를 버렸고, 아들은 류드밀라의 부모가 키웠다. 두 번째 결혼은 1942년에 친구이자 동료 저격수였던 레오니드 키첸코(Leonid Kitsenko, 1915~1942)와 했지만, 그는 2달 뒤에 독일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사망했다. 전투하면서 생긴 전우로서의 정과 서로의 애정이 무척 각별했던 만큼 류드밀라는 그의 죽음에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3번째 결혼은 10살 연상인 콘스탄틴 셰벨료프(Konstantin Shevelyov, 1906~1963)와 했는데, 결혼할 당시 둘 다 나이가 많아서 자식은 두지 않았다. 전쟁으로 겪은 수많은 트라우마와 첫번째 남편으로 인해 생긴 상처, 사랑하던 사람들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강고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평생 우울증과 PTSD,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으며, 이는 아마도 그녀의 단명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